최근 하릴 없이 집에만 앉아 있다. 지금 당장은 특별히 일을 할 생각도 없고, 그에 대한 압박도 없어 당분간은 이렇게 지낼 것 같다. 집에 앉아 있어도 특별히 하는 것은 없다. 그간 못 읽던 책을 읽기도 하고, 그간 듣지 않았던 오래된 음반을 하나씩 꺼내어 듣기도 하고. 인터넷으로 새 옷을 살까, 신작 게임을 살까, 고민하기도 하며, 그냥 혹은 저냥 지내고 있다. 지내고 있는 듯하다.
갑자기 노인과 같은 생활을 하고 있는 내게, 친구 중 하나는 '충전'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고 말했다. 지금 이 나른한 생활에 충실함으로서 다시 또 살아갈 에너지를 얻는 것이라고, 그 에너지로 다시 또 전력질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. 나는 그때 웃었지만, 사실 내 생각은 그렇지 않았다. 지금 나는 방전 위기라고, 지금 이대로 더 가면 쓸 수 없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. 친구의 눈으로 바라보았던 내 웃음은 어떤 모습이었을지.
나는 항상 이렇다.
살다가 문득 주위를 둘러보면 아무도 없을 때가 있다. 분명 어제까지는, 저번 주까지는 부담스럽게 느껴질만큼 풍성한 인간 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는데 돌아보면 혼자인거다. 매일 몇 번씩은 해야했던 메일 계정 확인을 하지 않아도 되고, 약속을 잡을 때, '잠깐- 잠깐-' 하며 캘린더를 보지 않아도 단 순간의 망설임 없이 '응, 그래.' 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된다. 혹시나 전화를 받아주지 못할까봐, 언제나 머리 맡에 두고 잠드는 휴대폰도 놓고 외출할 수 있게 되고. 어쩌다가 낸 자신의 목소리가 지닌 어색함에 화들짝 놀라는 바보가 된다. 그렇게 방전되는 거다.
그러다가 정신차리면 주변에 아무도 남지 않는 거다. 나를 사랑해주었던 한 꼬마도, 집에 돌아가는 길이면 내게 전화를 걸던 바보도, 아침이면 나를 깨워주던 아가씨도, 내가 그토록 좋아했던 그 사람도, 내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던 그 사람도, 모두 그랬다. 언젠가부터 나는 항상 이렇다. 그러고나면 다시 또 지난 날 받았던 사랑이 그리워 다시 또 다른 누구를 만나고, 관심을 끌고, 다시 또 무너지고. 폐허에 홀로 남고.
요 근래의 인간 관계는 만족스러웠다. 목소리만 들어도 기분이 나아진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되었다. 갑자기 연락이 닿지 않으면 불안하다는 것이 어떤 것인지 알 수 있게되었다. 지금까지 그렇지 않았기에. 그래서 무서운 거다. 어느 날 눈을 뜨면 모든 것이 환상이 되어있을까봐, 없던 일이 되어버릴까봐. 항상 그랬듯이.
난 왜 이렇게 겁쟁이인지.