"차렷! 경례!"
"…."
초등학교를 다닐 때, 나는 보이 스카우트의 일원이었다. "차렷! 경례!" 다음에 어떤 구호를 외쳤었는지, 간이 텐트를 설치할 때 어떻게 하는지, 매듭을 묶을 때는 어떻게 묶어야 풀리지 않는지 같은 것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지만, 단 한가지 확실하게 기억나는 것이 있다. '말대가리'가 그것이다.
말대가리는 내가 5학년이었을 때, 6학년 선배였다. 대장이었나, 부장이었나, 하는 나름의 직책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한다. 나와 이름도 채 기억나지 않는 친구 하나는 그를 '말대가리'라고 부르곤 했었는데, 그 이유는 그의 얼굴이 상당히 길었기 때문이다. 전형적인 말상이었다. 보통 키아누 리브스를 전형적인 말상이라고 말하곤 하는데, 그와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였던 것으로 기억한다.
보이스카웃의 구호 조차 기억의 편린에서 찾을 수 없는 내가 '말대가리'를 기억나는 것은 그의 얼굴이 길어서가 아니다. 어쨌든 그는 선배였고, 그 또래의 아이로서는 좀처럼 가질 수 없는 무한한 포용력과 이해력을 갖고 있었다. 무려 한 살이나 어린 나와 친구(심지어 이 녀석도 말상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.)가 '말대가리, 말대가리', 하며 쫓아다닐 때도 한 대 때려줄 법함 직에도 그는 그냥, 그냥 웃어주었다.
일 년이 지나고, 나와 내 친구가 6학년이 되었을 때, 하굣길에서 우연히 '말대가리'를 만났다. 그의 얼굴은 여전히 길었지만, 우리에겐 다소 생소한 교복을 입고 있었다. 내 친구는 그에게 '여어, 말대가리.', 했다. 그리고 그가 어떻게 했었더라…. 자세히 기억나지는 않지만, 특별히 기억나지 않는 것을 보니, 그는 그때도 그냥 웃었던 것 같다. 언제나 웃어주던 그가 그때 화를 내었더라면, 내가 똑똑히 기억하고 있으리라. 이질적인 것은 대게 기억에 남는 법이니까.
그가 머물렀던 자리에 6학년이 된 내가 머물고, 그와 같이 교복을 입게 되었을 때도 나는 결코 '말대가리'가 될 수 없었다. 내가 기억하고 있는 '말대가리'와 나 사이에는 분명한 거리가 있었다. 나는 그가 그랬던 것처럼 어린 후배들에게 웃어줄 수도 없었고, 실수나 잘못을 포용할 수도 없었다. 내가 중학교를 졸업할 때까지도, 내 기억 안에 살고 있는 '12살의 말대가리'는, '15살의 나'보다 더욱 성숙한 존재인 것처럼 느껴졌다.
지금까지 살면서 나는 수 많은 '말대가리'를 만나왔다. 고등학교에 입학할 때 즈음에 만났었던 사촌 누나, 나를 가르쳤었던 과외 선생님, 내게 지우고 싶은, 그러면서도 지울 수 없는 모순을 주고간 사람들, 처음 피씨통신을 접했을 때 만났던 형·누나들. 어느덧 시간이 흘러, 내 기억 속에 머무르고 있는 그들보다 내 나이가 더 많아졌지만, 나는 여전히 그들보다 나을 것이 없다. 시간이 왜곡되어 지금의 내가, 그 당시 나와 만났던 그들을 만나게 되어도, 나는, 그들에게 그 어떤 것도 해줄 수 없을 것 같은 기분이다. 내가 중학교에 들어가고, 고등학교에 들어갔어도 '말대가리'가 될 수 없었듯이.
도대체 언제가 되어야 나, '말대가리'가 될 수 있을까. 그리고 또 얼마나 오랜 시간이 흘러야 다른 이들이 머물렀던 자리까지 올라설 수 있을까.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를 '말대가리'로 기억하고 있을까.
나는 아직도 이리도 어리다. 꽤 나이를 먹었다고 생각했는데, 아직도 한참 어리다. 그래서 한숨이 나온다.